
대한초등교사협회(회장 김학희)가 8일 초등 전일제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돌봄의 중심은 가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전국 확산 중인 '10시 출근제'의 기본 철학과 일치하는 내용으로, 학교 중심 돌봄 확대보다는 가정에서의 돌봄 시간을 늘리는 정책이 바람직하다는 교육계의 인식을 보여준다.
10시 출근제는 2022년 광주광역시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된 정책이다.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초등학생 학부모가 임금 삭감 없이 하루 1시간 근로시간을 줄여 자녀 돌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광주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사업주의 손실을 보전해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돕고 있다.
이 제도는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경상북도는 올해 2월부터 '초등맘 10시 출근제 장려금' 지원을 시작했다. 1개월 약정 기업은 40만원, 3개월은 100만원을 각각 지원하며, 지원 대상을 초등 전학년 학부모로 확대했다. 지난해 시범 운영에서는 33개 기업, 36명의 근로자가 참여했다.
수원시도 올해 6월부터 지원 대상을 초등학교 1학년에서 1~6학년 전체 학부모로 확대했다. 직원 1명당 2개월 동안 최대 60만원을 지원하며, 1개 사업장당 최대 10건, 총 100건을 지원한다.
대한초등교사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초등학생을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학교에 붙잡아두는 구조"를 강력히 비판했다. "저학년 아동은 발달 특성상 긴 시간 학교 생활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아이들이 '쉬고 싶다, 너무 피곤하다'라고 호소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아동의 발달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10시 출근제는 정반대 철학을 갖고 있다. 아이들을 더 오래 학교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협회가 우려한 "국가 정책이 아동의 발달권을 침해하는 것은 교육적·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는 지적은, 역설적으로 10시 출근제의 교육적 가치를 부각시킨다.
협회는 성명에서 "돌봄 부담 완화라는 목표를 교사에게 떠넘기지 말고, 지자체와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적 인프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시 출근제는 정확히 이런 사회적 인프라의 사례다. 국가나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하고, 기업이 협력하며, 가정이 혜택을 받는 구조로, 학교나 교사에게 추가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협회가 비판한 "교사에게 민원·행정·관리 업무를 전가하는 구조"와 달리, 10시 출근제는 오히려 부모가 아침에 여유를 갖고 아이를 돌본 뒤 등교시킬 수 있어 교사의 업무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협회는 "공간·인력·프로그램이 확보되지 않은 '양적 확대' 정책을 중단하고, 질 중심의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성급한 전일제 확대는 저품질 프로그램 → 학부모 불만 → 교사 행정 폭증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우려했다.
10시 출근제는 이런 악순환의 여지가 적다. 새로운 시설이나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않고도 기존 사회 시스템의 작은 변화만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협회가 강조한 "양보다 질이 먼저"라는 원칙에도 부합한다. 단순히 돌봄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가족 시간을 만들어주는 정책이다.
협회는 "학원 대체를 내세웠지만, 학업경쟁 심리를 건드리지 못하는 한 사교육비 절감 효과는 없다"고 지적했다.
10시 출근제는 이런 한계를 우회하는 접근법이다. 사교육비 절감을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가정에서의 아침 시간을 확보해 가족 관계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부는 10시 출근제를 국가사업으로 확정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했다. 2026년부터 시행될 '육아기 10시 출근제'는 적용 대상이 초등학생 학부모뿐 아니라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까지로 확대되고, 지원 기간도 최대 1년까지로 늘어난다.
하지만 여전히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무자만이 대상이어서 대기업 직장인이나 공무원, 교사 등은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초등교사협회의 성명은 현재 교육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전일제처럼 학교의 기능을 무한 확장하는 정책보다는, 10시 출근제처럼 가정의 역할을 지원하는 정책이 더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협회가 요구한 "돌봄은 지자체·지역 돌봄센터 중심으로 운영할 것"이라는 대안도 10시 출근제의 철학과 일치한다. 학교에 모든 것을 떠안기는 것이 아니라, 각 주체가 적절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협회는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는데, 이런 맥락에서 10시 출근제는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결국 대한초등교사협회가 제시한 "가정 중심 돌봄" 철학은 10시 출근제의 확산에 교육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학교 중심 돌봄 확대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게시물 댓글 0개